농수산식품장관 유정복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취임한 지 100일을 앞둔 지난 3일은 안동발 구제역이 확산되느냐 아니면 한풀 꺾이느냐는 기로에 서 있던 시점이었다. 그래서인지 기자와 만나자마자 유 장관은 자연스럽게 구제역 이야기부터 꺼내들었다.방역에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일단 구제역이 발생하면확산을 한 방에 막을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이 없어 곤혹스럽다는 것이 첫마디였다. 그러면서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장관은 "구제역은 주로 구제역에 오염된 외국 농가를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국내에 전파되는데 이들에 대한 사전 검역 없이는 예방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국내 축산농가에서 최근 7개월간 외국을 다녀온 사람만 2만여 명인데 이 중 7000여 명이 출국사실을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걱정했다. 정부가 아무리 구제역 근절에 나서더라도 구제역이 발생할 틈이 여기저기 늘 뚫려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유 장관은 꼭 올해 안에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계류 중인 `가축전염예방법`이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외국을 방문한 축산농가 관계자나 외국 축산농가에 다녀온 일반인들 모두 입국 시 의무적으로 검역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만큼 구제역이 국내에 발을 붙일 수 있는 여지를 줄일 수 있는 셈이다.

구제역뿐만 아니다. 유 장관 취임 후 뜨거운 감자로 불릴 만한 농식품부 현안들이 이곳저곳에서 우후죽순으로 불거졌다. 쌀 조기 관세화가 지난 9월 말 물거품이 됐고, 지난 가을 배추 등 채소 가격이 폭등해 소비자 불만이 쏟아지자 관련 대책을 마련하느라 거의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채소 가격 급등 현상과 관련해 유 장관은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 장관이 생각하는 최적 유통구조 틀은 바로 농가가 안정적인 소득을 얻고, 소비자가 적절한 가격에 구매하는 것이다.

이처럼 농가와 소비자가 윈윈하는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유 장관은 우선적으로 "산지 유통인들을 법인화해 거래 투명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품목별로 전문조합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지유통인들이 전체 거래 물량 중 80%가량을 매집해 도매시장 가격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법인화해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 표현이다.

농협 신ㆍ경 분리도 유통시스템 개선이라는 큰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농협법 골자는 바로 농협 신용부문과 농업부문을 분리해 농협이 본래 업무인 농업 분야 생산성 개선과 수급 안정에 올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농협 계약재배 물량을 현행 10%에서 2013년 30%까지 높일 계획이다. 농협과 사전에 구매계약을 맺은 농가가 재배하는 계약재배 물량이 늘수록 정부가 농산물 수급을 조절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유 장관은 "농협은 전국 단위 회원조합을 두고 있고 공익기관인 만큼 안정적인 농산물 수급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 장관은 신ㆍ경 분리에 따른 자본금 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지원 금액을 규정할 수는 없고, 농협이 먼저 자구 노력을 한 뒤에 정부가 지원을 위한 큰 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유 장관은 매일경제신문이 농업을 국가의 부를 키우는 신성장동력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진행하고 있는 `아그리젠토 코리아`에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 유 장관은 "농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관심을 갖고 있고 농업을 포함한 종자, 관상어, 유전자 등 부가가치가 높은 생명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지난 6일 종자산업 등 6대 생명산업 분야를 선정해 향후 10년간 7조원 이상을 지원하는 `생명산업 2020+ 발전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다양한 이슈에 대해 일사천리로 시원시원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보니 취임 3개월여 만에 농업 전문가가 다 된 것 같다고 기자가 칭찬(?)하자 유 장관은 "내가 확실히 업무 파악을 해야 직원들 앞에서 솔선수범할 수 있고 그래야만 제대로 된 지시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구제역 등 여기저기서 터지는 각종 현안에도 농식품부가 중심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도 유 장관의 솔선수범하는 부지런함과 부드러운 리더십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젊었을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실제로 유 장관은 최초ㆍ최연소라는 타이틀을 유난히 많이 가지고 있을 만큼 젊은 나이에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22세에 행정고시(23회)에 합격한 것을 시작으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뒤 최연소 경기도 기획담당관(93년), 최연소 관선 김포군수(94년), 최연소 관선 인천 서구청장(95년), 최연소 초대 민선 김포군수(96년), 최연소 김포시장(98년)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나이가 어린 데다 얼굴마저 동안(童顔)이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았다. 만 36세에 김포군수로 부임한 뒤 지역 행사에 참석하면 주민들은 으레 유 장관을 바로 옆에 두고서 "새로 오신 군수는 어디 있느냐?"고 묻기 일쑤였다. 본인이 군수라고 답하면 그제서야 정식 인사를 나누며 서로가 머쓱해하던 기억이 많다고 유 장관은 털어놨다. 그러나 젊은 군수에 대해 김포 주민들은 전혀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온화한 미소를 배경으로 탁월한 소통 능력을 발휘하는 한편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무기로 군수 시절부터 현장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소통과 업무 추진력으로 김포 주민들에게 신뢰를 받았던 유 장관이 관선 김포군수를 마치고 인천 서구청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95년 당시 첫 민선 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있었는데 김포 주민들이 서구청에 몰려와 민선 김포군수 출마를 간곡히 요청했다. 유 장관은 임기 3개월짜리 서구청장직을 마치면 장차 내무부 관료로 출세할 수 있는 기반을 이미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유 장관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김포 출신도 아니고 1년 남짓 관선 김포군수를 했던 저를 위해 주민들이 출마를 원하고 있다는 데 감격했습니다. 개인 영달을 위해 이들 요구를 묵살한다면 공직자로서 본분을 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인천 서구청장을 끝으로 미래가 보장된 직업공무원의 길을 포기하고 무소속 출마에 나섰다. 출생 후 고등학교 때까지 인천을 벗어나지 않았고 당시만 해도 여야 정당과 연이 없었던 그로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당시 유 장관 선거운동에 김포군 유권자 7만여 명 중 1만여 명이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나서면서 여야 후보를 모두 큰 표차로 제치고 승리했다.

김포군을 김포시로 승격시키겠다는 공약을 지킨 뒤 시 공무원들이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김포시에 허가과를 설치한 것도 오래전부터 인ㆍ허가 관련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는 시민 불만을 자주 들어왔기 때문이다. 허가과를 설치하면서 시민들이 인ㆍ허가를 받기 위해 이 부서, 저 부서 찾으러 다닐 필요 없이 허가과에서 원스톱으로 일처리를 할 수 있게 돼 불만이 사라지고 업무효율이 높아졌다. 김포시 허가과 설치 사례는 당시 청와대 국무회의에도 보고돼 정부가 전국 시ㆍ군ㆍ구에 허가과를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또 유 장관이 시장 시절에 김포시장 관사를 전통예절 교육과 전통혼례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예절교육관으로 바꾼 것도 시민들 의견을 수렴한 것이다.

유 장관은 "시민들 곁으로 다가간다는 취지에서 관사를 비우고 이곳을 김포 시민들이 원하는 시설로 바꾸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민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섬김의 리더십과 끈끈하게 밀어붙이는 강한 업무 추진력이 현재 유 장관을 있게 했다.

◆ 의원시절 본회의 출석률 95%…법안 발의도 상위권

= 유 장관은 그동안 별로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다. 행정고시는 낙방 경험 없이 대학 재학 중 단번에 합격했고, 자치단체장 선거도 무난히 통과했다. 우스갯소리로 그가 여지껏 떨어져본 경험이 있다면 군대 시절 치른 운전면허 시험뿐이다. 당시 1차 필기시험은 수험자 중 최고점을 받았지만 주행시험에서 낙방하는 고배를 마셨다. 그가 쓴 `녹색연필`이라는 자서전을 보면 `내 인생 최초의 낙방이었다`고 적혀 있다.

유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에도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이름을 날렸다. 본회의 출석률이 매년 95%에 달했다. 정치 개혁이나 공익 관련 법률 개정안 등 법안 발의 건수도 많다. 17대 국회에서 같이 의정활동을 한 홍문표 전 의원(현 농어촌공사 사장)은 "대다수 의원이 수많은 공문서류를 대충 훑어보기 일쑤지만 유 장관은 언제나 꼼꼼히 서류를 살피는 등 늘 공부하는 의원이었다"고 회고했다.

유 장관이 2005년 초선 의원 신분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에 발탁된 것도 성실하고 변함없는 태도 때문이라는 평가다. 유 장관은 박 전 대표 비서실장을 맡아 장관 자리에 오르기 전 5년 가까이 박 전 대표 옆에서 일했다. 그는 박 전 대표 강점으로 한결같다는 점을 꼽는다. 또 무엇이든지 배우고자 노력하는 박 전 대표 자세를 좋아한다고 한다. 유 장관 본인 인생관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재섭 전 의원은 유 장관을 일컬어 `박근혜 사본`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실제로 유 장관 본인도 "박 의원 사본이라 불릴 정도로 박 전 대표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고 인정한다.

요즘 유 장관은 무척 바쁘다. 이전에도 늘 분주하게 살아왔지만 한 부처 수장이 되고 보니 챙겨야 할 사안이 엄청 많다. 유 장관은 "요즘은 쉬는 날은 고사하고 쉬는 시간조차 없다고 해야 맞는 것 같다"며 "최근에는 여유 있게 앉아서 책 읽을 시간도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유 장관은 정치인이자 장관으로서 요즘 국회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국회의원으로 있다가 잠시 장관으로 나와 국회를 바라보니 새로운 시각이 생긴 듯했다. 유 장관은 "장관이 되고 보니 정치인일 때 보이지 않던 부분이 새로 보인다. 정치인들은 아직도 국민들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것 같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엄존한다. 또 국가 위기 사태에서도 정치적 접근만 하는 것 같아 국민이 걱정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 유정복 장관은…

1957년 인천에서 태어나 제물포고를 졸업할 때까지 인천에서 자랐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재학 중 행정고시(23회)에 합격했다. 김포군수-김포시장-인천 서구청장을 지내면서 전국 최연소 자치단체장 기록을 세웠다. 학사장교 1기 임관, 초대 민선 김포군수, 김포시장 등 `첫 번째` 타이틀도 많다. 김포에서 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된 뒤 제1정책조정위원장, 당대표 비서실장, 박근혜 경선후보 비서실장을 지냈다. 18대 국회의원으로 일하던 중 지난 8월 말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임명돼 이달 7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지금 본인을 있게 한 김포시에 대한 감사 표시로 김포장학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지역민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을 다스리고 만민을 편안히 한다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을 공직자이자 정치인으로서 인생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출처 : 매경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