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에 주드 로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배정남이 있다. 패션모델 배정남은 온라인 상에서 그 어떤 연예인보다 많은 팬을 거느린 스타다. 모델로서177cm라는 작은 키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감각으로 자신을 스타일링한다. 여자처럼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도 아닌데 그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단지 그가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가격이 치솟는 아이템을 탄생시킬 만큼 매력적인 패션 감각을 지녔다.

평범함 속에 참신하고 세련됨을 녹아내는 그의 패션 스타일링은 ‘배정남 스타일’이라는 키워드를 매번 상위 랭킹에 올려놓을 정도로 수많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배정남은 유명한 배우도, 가수도 아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모델이다. 단순히 티셔츠와 바지를 입었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패션 스타일링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2008년의 젊은이들은 평범함과 무난함 속에서도 고유한 퍼스널리티를 드러내길 원하는 것이다. ⓒ 마피아피플

2008년의 젊은이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외적인 치장이나 패션 자체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남들과 다른 개성적인 패션스타일링에 공을 들인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트렌드를 따르되, 모든 것이 남과 같진 않았으면 좋겠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은 티셔츠를 입어도 나만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어한다. 평범함과 무난함 속에서도 고유한 퍼스널리티를 드러내길 원하는 것이다.

배정남의 옷들은 얼핏 보면 제 멋대로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자신감을 기반으로 한 믹스앤매치의 고차원적 스타일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옷을 입더라도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며, 베이직한 티셔츠를 무심히 걸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져 보인다는 것을 직접 증명한다. 이것이 바로, 일명 ‘배정남 패션’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원하는 평범함 속의 스타일리시함과 ‘배정남 패션’이라는 트렌드가 만나면서 ‘배정남 스타일’이 탄생한 셈이다. 이제 배정남 스타일은 언론과 패션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언급될 만큼 고유한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았다.

	▲ ‘스트리트 패션’이란 유명 디자이너의 컬렉션에서 제시되는 것이 아닌, 젊은이들에 의해 회자되고 그들만의 폭발적인 유행으로 새롭게 파생되는 패션경향을 말한다.ⓒ 마피아피플

이처럼 유명 디자이너의 컬렉션에서 제시되는 것이 아닌, 젊은이들에 의해 회자되고 그들만의 폭발적인 유행으로 새롭게 파생되는 패션경향을 ‘스트리트 패션’이라 한다.

대개 이런 스트리트 패션들은 소위 언더나 인디 계열의 젊은이들이 소화하는 패션으로 치부하지만, 많은 디자이너들이 스트리트 패션을 모티브로 컬렉션을 기획할 만큼 예전부터 그 유명세를 달리해왔다.

실제로도 얼마 전 타계한 이브 생 로랑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60년, 봄과 여름 비트닉(Beatnik) 컬렉션에서 젊음을 우위에 둔 악어가죽 모터 사이클 자켓 등의 길거리 패션을 선보여 최고급 맞춤복에만 익숙했던 관객들에게 큰 환호를 받은 바 있다. 마크 제이콥스나 안나 수이 등 최고급 기성복 디자이너들도 스트리트 패션을 적극 수용해 많은 찬사를 들었다.

	▲ 길거리에서 시작된 트렌드 모두가 스트리트 패션인 셈이다. ⓒ 마피아피플

우리나라에서 스트리트 패션이라 함은 보드나 힙합패션, 빈티지룩(vintage fashion. 옷 끝이 닳아 실밥이 터져 나온 바지나 구멍이 숭숭 뚫린 셔츠, 오래 입어 색이 바랜 옷 등의 중고 의상)쯤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새로운 패션경향으로 대두된 라이더룩(rider look.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들이 입는 검정 가죽점퍼와 가죽장갑•헬멧 등의 기본 공식패션)이나 그런지룩(grunge look. 1980년대 정통 하이패션과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더럽고 지저분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 펑크룩(punk look. 머리를 핑크나 그린으로 염색하는 등 반항적이고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공격적인 패션), 모즈룩(mods look. 꽃무늬나 물방울 무늬가 현란한 셔츠와 넥타이, 아래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바지, 장발 등의 복장)등 디자이너가 아닌 대중의 힘으로 파생된 모든 패션과 문화도 포함된다. 길거리에서 시작된 트렌드 모두가 스트리트 패션인 셈이다.

패션잡지에서 흔히 ‘파리(Paris) 스트리트 패션’이나 ‘스트리트 패션 in 밀라노’ 등이 유심히 다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길거리가 ‘런 웨이(Run way)’라 여겨질 만큼 패셔너블하고 다채로운 트렌드가 대두되고 유명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흔히 ‘니뽄필’이라 불리는 일본 패션 경향도 사실은 긴자나 신주쿠 같은 도심지의 거리에서 시작된다. 지금의 도쿄 거리는 뚜렷한 유행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저마다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는 스타일이 넘쳐난다. 영국 역시 브리티쉬룩을 기반으로 한 빈티지룩이나 펑크룩 등을 런던 거리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데, 이는 여지없이 런던의 패션 컬렉션에 반영되고는 한다.

스트리트 패션은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탕으로 하는 뚜렷한 컨셉이 중요하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스트리트 패션매거진을 통해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접해도 좋고, 온∙오프라인 상에서 방문할 수 있는 편집샵이나 빈티지샵의 토탈코디로 차근차근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좋다.

	▲ 스트리트 패션은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탕으로 하는 뚜렷한 컨셉이 중요하다.ⓒ 마피아피플

	▲ 모든 ‘패션 피플’들은 거리 곳곳에서 다른 이의 패션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스타일링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도벽’을 지녔다.ⓒ 마피아피플

	▲ 류재도 패션칼럼니스트

스트리트 패션 연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패션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는 ‘watching people’ 습관이다. 자신의 스타일링과 비교해 나가는 재미있는 이 방법은, 자생적으로 발전돼 하이 패션까지 섭렵하는 스트리트 패션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본질이다.

실제로 주위에 옷을 잘 입는다는 이른바 모든 ‘패션 피플’들은 거리 곳곳에서 다른 이의 패션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스타일링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도벽’을 지녔다. 당신도 자신과 다른 개성 넘치는 스타일링을 훔치는 ‘도둑’이 되어야만 스트리트 패션리더가 될 수 있다.

류재도 패션칼럼니스트